Jul 20, 2013

The Master, 2012

from
 

영화를 장르 관계 없이 정말 많이 보긴 하지만 이런 영화는 헐리웃 블록버스터가 돈 아낌없이 들였구나로써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것과는 360도 다른 느낌으로 대단하다고 느껴짐! 영화감독을 예술가로서 예찬하게 되는 ㅎㅎㅎ  굿굿굿
 
 
 
이동진 평론가
이 영화는 존 하버드가 창교한 사이언톨로지에 관한 이야기가 핵심인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서브 텍스트 중에 하나에 불과하죠. 어쨌든 폴 토마스 앤더슨(이하 PTA)이 SF소설작가에서 교주로 변신한 론 하버드라는 개인에 대해서 굉장히 영화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렇게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되면서 사이언톨로지가 만들어지기 직전에 상황들을 리서치하고 전쟁터에 갔다 온 사람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 쳐해있는가 에 대한 존 휴스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렛 데어 비 라이트>에서 상당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PTA 영화에는 여러 가지 키워드 들이 있는데 간략하게 말하자면 부자관계 혹은 유사 부자관계 그리고 이미 구성되어있는 어떤 특정한 집단, 마지막으로 시대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겁니다.


시대성의 측면에서 더 얘기를 드리자면 <마스터>는 거의 대부분을 65mm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합니다. 이번 영화를 찍으려고 미국에 남아있는 65mm 카메라 3대를 다 썼다는 거예요. 65mm 카메라는 소음도 심하고 무게도 크기 때문에 자유로운 카메라 워크를 할 수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65mm를 사용한 이유는 65mm의 룩 때문이라는 겁니다. 65mm의 룩은 본인이 생각 할 때 굉장히 50년대스러워서 이 영화의 이야기는 반드시 저 카메라로 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직접 공부하면서 찍었다는 거예요. 본래는 주로 인물의 상반신 클로즈업이나 미디엄쇼트 위주로만 사용하려고 했는데 찍다보니까 85%를 그걸로 찍었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가 원했던 건 클로즈업에 가깝게 인물을 담아 낼 때 그 고유한 느낌을 담아내고 싶었다는 거죠.



<마스터>에서 호아킨 피닉스(이하 JP)는 거의 귀신이 들린 것 같은 연기를 하는데요. JP의 얼굴을 보시면 항상 왼쪽 입술이 찌그러져 있습니다. 말할 때는 왼쪽 입을 벌리고 오른쪽 입은 잘 안 벌려요. 마치 복화술을 하는 것처럼 입을 최소한으로 벌리고 말을 하고 얼굴은 항상 좌우의 균형이 안 맞아있어요. 저런 것은 다 배우가 만드는 거죠. 근데 저는 이것이 얼굴에서 시작 됐다고 보지 않는데요. 일종의 메소드 연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러니까 배역과 실제 자신을 일치시켜나가는 방식에 관한 부분이겠죠. 근데 JP가 캐릭터를 잡고 나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PTA도 JP를 놓아주는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대요. 그래서 저런 귀신같은 연기가 나오게 됐는데 감방에 들어가서 난동을 피울 때 애초에는 양변기을 깨는 장면은 없었답니다. 본인이 너무 몰입하다 보니까 발로 차서 완전히 산산조각을 낸거죠. 또한 초반에 해변에서 하는 대사들도 다 즉흥연기 였다고 해요. 그리고 제가 볼 때 JP가 프레디란 캐릭터를 해석한 핵심은 바로 어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깨를 항상 비스듬하게 망가뜨려 놓죠. 그렇게 어깨를 망가뜨리면 등은 굽을 수밖에 없습니다. 등이 굽으니까 몸을 두 손으로 지탱 할 수밖에 없죠. 그럼 왜 캐릭터를 저렇게 잡았냐는 건데 프레디란 남자는 쉽게 얘기하면 안에서 무너진 남자예요. 안에서 무너진 것을 어떤 식으로든 간신히 지탱을 하는 거죠. 겨우 지탱은 하지만 그는 지탱 할 만한 에너지도 의지도 없어요. 그 상황에서 안에서 무너지는 것을 이 남자가 간신히 두 팔로 우그러드는 몸을 지탱하는 모습 자체가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 그 자체로 핵심이 된다는 얘기죠.


그리고 랭카스터 역으로 분한 필립스 시어모어 호프먼(이하 PSH)은 PTA가 가장 좋아하는 배웁니다. PTA 영화 전편에 다 나오죠. 원래 PTA는 한 배우하고 작업을 같이 한다고 합니다. <마스터>에서 연기적인 의미에서도 굉장히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게 누가 봐도 JP의 귀신들린 연기 때문에 PSH의 연기는 그렇게 잘하는 연기처럼 안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PSH의 연기는 JP의 연기와 연기법이 조금 다릅니다. 굉장히 절제되고 계산적인 연기를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PSH의 표정 같은 것을 보게 되면 영화에 어떤 감정적인 중심을 확실하게 잡아주는 것 같아요.


결국 이 영화의 핵심이 JP가 연기하는 프레디라는 인물인데요. 실제로 시나리오 초기 단계에서 PTA가 PSH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대요. 근데 그 때 PSH가 뭐라고 말했냐면 이 영화는 무조건 프레디에 관한 영화지 절대 랭카스터의 관한 영화가 아니다. 시나리오의 초점도 거기에 좀 더 무게를 싣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했대요. 훌륭한 조언이죠. 어쨌건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엄청난 일을 겪고 나서 심리적으로 극심한 장애를 겪는 사람의 이야기잖아요. 근데 PTA가 예전에 어떤 책을 읽다가 굉장히 꽂힌 구절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게 뭐냐면 신흥 종교가 급속도로 부흥하는 시기랑 전쟁이 끝나는 시기가 굉장히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는 한 줄 자리 글이었단 거예요. 미국이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사이언톨로지가 급격한 붐을 이루게 된 것이 사실은 관계가 있다는 거죠. 그것을 머리에 염두 해두고 있다가 어떤 하나의 스토리라인의 핵심으로 잡았다는 겁니다.



극중에 인물들을 보면 프레디란 남자는 일단 알콜중독이예요. 술을 직접 제조하는데 심지어 시너(thinner)까지 집어넣는 못말리는 알콜중독자죠.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폐소공포증을 느끼는 사람인데 어떻게 보면 그래서 마스터하고도 굉장히 잘 맞았던 거예요. 영화에서 보면 프레디는 뭔가 극적인 상황이 생길 때 굉장히 좁은 공간에서 있죠. 감옥에 있다든가 배 안 어둑어둑한 작은 선실에 있다든가 이런 식으로, 또한 고모와의 성적인 관계를 가진 근친상간에 경험이 있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그리고 아버지는 술 먹다가 죽었죠. 이런 식의 최악의 경험들을 가지고 있고 완전히 내부로부터 뭉개지고 파괴된 사람인 거에요.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영화는 사이언톨로지를 하나의 소재로 삼고 있죠. 하지만 여기서 사이언톨로지라는 말을 쓸 수가 없으니까 더 코즈라는 말을 쓰죠. 근데 더 코즈라는 말도 재미있는 게 코즈라는 것은 결국은 지금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모든 악의나 고통은 과거의 어떤 한 특정한 지점에 가장 중요한 원인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사이언톨로지 외부의 시각을 대변하는 인물도 등장시키면서 균형을 잡아주는가 하면 이 영화에서 사이언톨로지를 다루는 방식은 판단중지의 상태예요. 마스터도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죠.


덧붙여서 랭카스터와 프레디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영향을 주는 관계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랭카스터는 프레디가 만든 특별한 폭탄주를 좋아합니다. 근데 그것이 특별한 계기에서 프레디가 만들어주는 술에 대한 굉장한 탐닉으로 간 거죠. 그래서 영화 속에서 랭카스터를 처음 만나는 단계에서 프레디가 만들어주는 알콜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알코올로 위안을 주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랭카스터는 종교의 교주에 해당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허점을 보이면 안 되는 인물이지만 그도 사실은 굉장히 허점이 많은 사람인거죠. 그런 허점을 채워주거나 혹은 열어서 보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극중 인물이 프레디 인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도 어느 정도는 프레디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인물 이라는 거죠. 그리고 극중에서 랭카스터의 아들 벨은 아버지가 멋대로 꾸며낸 말일 뿐이라고 말을 하는데 이 말 자체가 감옥에서 랭카스터와 프레디가 다툴 때 프레디가 가족도 널 싫어하지 않느냐 라고 말하는 것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프레디는 일종의 유사 아들 인 거예요. 친아들 벨은 사실은 저런 마음을 갖고 있고 유사 아들인 프레디는 자신의 종교나 세계관에 대해서 굉장히 잘 들어맞아 보이는 사람 인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벨과 프레디는 경쟁적인 관계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프레디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보자면 그는 바다에 있을 때 편한 사람입니다. 바다의 속성은 떠다닐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프레디는 대지에 있을 때 항상 뜀박질하며 도망칩니다. 그러니까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그런 전제조건을 갖고 있는 사람이죠. 그리고 프레디 에게는 마스터 밖에 없는 거예요. 세상에서 자기한테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 혹은 소통 할 수 있는 사람은 마스터밖에 없죠. 그것이 이제 프레디가 마스터에게 종속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고요. 그러나 실제로 랭카스터가 프레디를 사회나 가족에 적응하게 하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도와준 건 사실이죠. 다만 거기에 계산도 있었어요. 왜냐면 프레디는 굉장히 극적인 남자기 때문에 초기에 신도들 앞에서 이 사람의 치료과정을 보여주는 게 포교활동의 굉장히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굉장히 슬픈 사랑이야기에요. 이게 농담이기도 하면서 아니기도 한데 이 두 사람의 사랑은 동성애 이런 걸 떠나서 저렇게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이걸 한 번 사랑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보세요. 예를 들면 랭카스터와 프레디가 집 앞 마당에서 뒹굴며 포옹을 하는 육체적인 친밀함의 표시라든지 농담을 해도 “누구 생겼나 프레디” 이런 말이 정상적인 남자끼리 할 얘기는 아니죠. 프레디는 어떻게 보면 두 번 사랑을 한 거죠. 과거에 도리스가 있고 지금은 랭커스터가 있는 거죠. 그리고 랭커스터가 프레디에게 전화로 “급한 일이 생겼는데 자네만이 도울수 있어” 라고 하는 장면은 사실은 프레디의 꿈인데, 랭카스터가 그렇게 말해주길 원하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랭카스터의 아내인 메리가 “계속 프레디를 데리고 있다가는 다 망칠 거예요” 라고 말하죠. 사실상 삼각관계인거예요. 메리는 프레디가 처음에 그런 감정상에 위협이 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죠. 그래서 세면대에서 랭카스터와 메리의 성적인 장면도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계속 프레디에 대해서 경계하는 입장을 보이게 되죠.


후반부에 프레디와 랭카스터가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을 보시면 굉장히 넓고 채광이 좋은 실내공간에 둘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마스터가 이 남자의 전매특허 같은 동작을 따라 해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감정적인 일치감을 보여주죠. 그리고 나서 랭카스터 “당신과 조각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고 싶은데 나 혼자서 가네요” 라는 가사의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우리는 이 영화에서 중국을 한 번 봤어요. 프레디가 애초에 배를 타고 간 곳이 상하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랭카스터가 저 노래를 부르는 이유는 과거에 도리스와 지금 프레디가 사실상 같은 위치에 있는 거죠. 그래서 프레디가 과거에 상하이로 떠나가느라고 도리스를 버렸지만 지금 상황에서 프레디는 결국 결별에 의해서 또 혼자 중국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거죠.


이 영화에서는 물결의 모습을 총 3번에 걸쳐서 보여 주는데 굳이 해석해 보자면 흘러가버린 자기의 과거의 삶 같은 거예요. 시간이 지나가버린 흔적 같은 거겠죠. 그냥 멍하니 물만 바라보는 거죠. 혼돈일 수도 있고 심연일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도리스를 두고 상하이로 혼자 떠날 때는 카메라가 서서히 올라가서 수평선을 보여줘요. 이것도 역시 과거에 흔적이지만 저기에는 자기가 버리고 온 도리스가 있는 거죠. 마지막 런던에서도 역시 수평선은 보여주지 않아요. 왜 이 3번의 물결 장면 중에서 두 번째 장면만 수평선을 보여줄까 하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어쨌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만들었던 그라운드 제로 지점이 과거 어디 너머의 수평선에 있는 거죠.


결국 이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서두에도 얘기했듯이 전쟁 등의 상처로 안에서 허물어져버린 남자에 관한 얘기라고 말할 수도 있고 어떤 굉장히 슬픈 사랑에 관한 얘기라고 할 수 있겠죠. 또 마스터라는데 집중해서 본다면 이 영화는 정 반대로 모든 사람에겐 누구나 마스터를 가지고 있다는 영화 일수 있다는 거예요. 그 마스터가 꼭 종교는 아니라는 거고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다 누구나 자기 마음속에 의존하고 종속되는 그런 마스터가 있는데 그 마스터와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오는 거죠. 일반적으로 성장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이 성장하는 지점이겠지만 이 영화는 성장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쨌건 그런 것들을 함축해 내기 위한 제목으로 볼 수 있다 라는 겁니다.


트위터 A
대부분의 쇼트가 등장인물들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주변 배경은 흐릿한데 어떤 의도가 있는걸까요.


이동진 평론가
이 영화에서는 상당부분 인물들을 묘사할 때 망원렌즈를 쓰고 있죠. 그 이유는 인물의 심리나 감정이나 심리 같은 거를 다루는 게 중요하지, 그것이 전체적으로 놓여져 있는 공간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지 않거든요.


트위터 B
<마스터>를 본 외국인의 리뷰를 보니까 타란티노에서 태랜스 멜릭으로 옮겨갔다는 리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동진 님께서 생각하시는 PTA의 연출 스타일의 변화와 그에 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동진 평론가
타란티노와 굳이 비슷한 점이 있다면 영화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기술의 재료에 있어서 너무나 예민하고 탁월한 감식안, 혹은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을 PTA가 갖고 있다는 거죠. 최근에 PTA의 영화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극도로 생략적인 화술이 되고 이러면서 관객들 입장에서는 조금 더 어렵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는 것 같고요. 반면에 영화가 더 깊어진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트위터 C
이 영화에서 마스터는 누구 혹은 마스터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동진 평론가
마스터는 극중에서 물론 랭카스터 이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보면 상황에 따라서 내가 누군가의 마스터가 되기도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마스터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영화가 굉장히 잘 보여주고 있죠.


트위터 D
<마스터>의 음악에 대한 간단한 해설도 부탁드립니다.


이동진 평론가
저는 PTA가 음악을 너무 잘 쓰는 거 같다고 생각해요. <마스터> 음악을 맡은 사람은 조니 그린우드 에요. 특히 엔딩크레딧 때 흐르는 Changing Partners 란 노래의 가사를 보면 짧은 춤을 추는 동안 사랑을 나눴는데 다른 파트너가 오면서 그 음악은 끝나게 되는데 이 영화의 상황이 그런 거죠. 전체적으로 굉장히 잘 쓴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No comments:

Post a Comment